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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gan Park

by Mt Solitary 2021. 3. 21.

 

 

 

 

 

 






1.

비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고 비소리를 들으며 잠이깬지 나흘이 넘었다.

비가 내려도 너무 많이 내린다.
하루종일 주룩 주룩 줄기차게 내린다.

이런 비는 정말 처음이다.
50년만의 최대 강우량이라고 한다.

집이 물에 잠기고 소도 떠내려가고 너무 위험해 다른곳으로 대피해야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우리는 사실 아무 영향을 안받은것이나 마찬가지다.

집안에 갖혀 축축하게 느껴지는 발밑의 카펫과 어쩐지 불쾌하게 느껴지는 실내의 젖은 공기 그리고 며칠째 널어놓은 젖은 빨래들을 제외하곤.

주말에 가던 산행을 아예 포기하고 의기 소침하게 소파에 하루종일 널부러져 있던 사실을 빼곤.

갑자기 일주전에 갔었던 Fagan Park과 그날의 좋았던 날씨가 마치 비현실적인 기억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빗물에 온몸을 내마낀채 활짝 웃는듯한 풀들과 나무들은 행복해 보인다.


 

 

 

2.

20년 되었다.

호주에 첨 왔을땐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많은것을 보고 많은것을 경험하려고 했었다.

 

도심안에 자리잡은 수많은 공원들이 너무 좋았다.

안 가꾼듯 정리가 안된듯 그러나 자세히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호주 스타일의 공원들이 축복같았다.

 

이 Fagan Park은 도심에 있는 공원은 아니다.

도시락을 싸서 소풍 갔었던 기억이 난다.
구불 구불 산길을 돌아 갑자기 나타나던 한적한 시골같은 곳에 위치한 이 곳은 그때도 지금도 그저 그렇게 그곳에 서있을뿐이었다.

그때 나의 눈에 이 공원은 그냥 내버려둔 들판 같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가보니....그동안 외진 산속을 자주 가던 나의 눈에 비친 이 공원엔 분명 문명의 냄새가 났다.

포장되고 잘 가꾸어진 평탄한 산책로, 널찍한 주차장, 놀이터, 넓은 잔디밭을 둘러가며 여러곳에 배치된 바베큐 불판과 벤치들.

그래도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주차된 차는 벌써 많았지만 산책로로 접어드니 금새 사람들 소리는 조용해 졌다.

멀리 보이는 숲으로 연결된 길위로 그리고 내 머리위로 햇살이 따뜻했고 나는 금새 평화로운 마음을 되찾았다.
20년 전에 한번 와봤지만 마치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것처럼 설레는 맘으로 가벼운 걸음으로 걸어갔다.

기억이 난다.
처음 Fagan Park을 갈때 나는 뜬금없이 그 즈음에 읽던 Dan Brown의 소설 다빈치코드에서 영감받아, 서양문화의 근간을 이루던 태양을 숭배하던 고대신앙(fagan)을 떠올렸다.

 

하지만 알고보니 그 땅을 소유하던 Fagan 이라는 사람의 성을 따서 지은것이었다.

Bruce Fagan 과 여동생 Ida Fagan이 New South Wales 주 정부에 자신들의 땅을 기부한 것이었다.

 

개인의 소유였던 땅이라고 하기엔 더 더욱 놀랍게도 땅은 엄청나게 크다.

 
타스마니아 보태닉 가든처럼 이런 저런 나라들의 garden을 조성해 놨다.
물론 타스마니아의 것과는 비교가 안되는 디테일과 외관이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훌륭하다.

한시간 여가 지나자 햇살이 너무 강해서 그늘을 찾아야 할 지경이었다.

이미 공원길은 두어바퀴 둘러봤고 연못가 나무 그늘아래서 연못위를 우아하게(?) 유영하는 하얀 거위를 쳐다보고 이름모를 새들도 쳐다보고 하다보니 어느새 정오가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