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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2021

by Mt Solitary 2021. 4. 7.

 

 

 



Easter Hike

부활절휴가 내내 날씨가 참 좋았다.
하늘은 맑고 공기는 청명해 전형적인 초 가을날씨였다.

첫 이틀을 우리는 산행에 할애했다.

첫날, 아침 일찍 준비를 마치고 블루마운틴으로 차를 몰았다.
블루마운틴은 벌써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멀리 우리가 걸어갈 능선을 둘러싼 깊고 넓은 계곡위를 신비한 물안개와 구름이 덮고 있었다.

 



10킬로 미터에 달하는 Narrow Neck Trail 을 3시간 정도 걸으니 마침내 숲속으로 내려가는 길 입구에 다다랐다.

 

호수가 멀리 보이는 나무 그늘 아래 짐을 내려놓고 점심을 먹은후 에너지를 되찾았다.




 

Taro's Ladder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 보니 아찔할 정도로 높고 다리가 떨렸다.

가파른 바위에 박아둔 큰 쇠말뚝에 한발 놓고 다른발 놓을곳을 조심스레 결정한 다음 발을 이동하면서 조심스레 내려갔다.

 

남편이 먼저 자신의 가장 크고 거대한 배낭을 메고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올라와서 딸의 베낭을 메고 내려갔고 그 뒤를 딸이 조심 조심 따라갔다.

그리고 그가 다시 세번째로 올라와 나의 베낭을 메고 내려가면 내가 다시 조심조심 따라 내려 갔다.

 

2016년 6월에 한 K To K 의 마지막 날 일정을 반대로 거슬러 가는 중이었다.

앞서가는 남편이 지고가는 자이안트같이 거대한 베낭을 보면서 그가 아니면 우리가 이런 등산을 할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오후햇살은 따갑고 우리의 배낭은 너무나 무거웠고 우리의 다리도 무거웠다.

Medlow Gap을 얼마 남기지 않은 가파르고 메마른 내리막길에서 앞서가넌 남편이 내는 외마디 소리를 들었다.
그가 미처보지 못한 쇠말뚝에 발을 헛디딘 순간 베낭의 무게때문에 균형을 잃어 넘어지면서 의지하고 있던 등산용 지팡이 한짝이 반으로 부러져 버린것이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가슴이 철렁했다.

숲속으로 들어서자 자연스레 맘이 안정되고 목적지가 멀지 않았다는것을 알았다.

풀들이 내 키보다 높아 길을 찾기가 쉽지 않은 구간이 종종 나왔다.
숲속길은 지난번에 내린 많은 비로 진흙탕이 되어 질척거리거나 길이 아예 작은 도랑처럼 변해버렸다.
사람들이 많이 가지않는 작은 길들은 모두 풀들에 가려버리고 막혀버렸다.

마침내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놀라운 변화에 모두가 넋을 잃었다.

캠핑하기에 적당한 낮은 잔디밭같은 공간이 길을 사이에 두고 넓게 펼쳐져 있었는데 모두가 너무 자라버린 풀들로 덮여서 여기가 바로 우리가 알던 캠핑 그라운드였나 할정도 였다.
겨우 탠트 두개나 칠수 있을정도의 공간만 남아있었고 그나마도 불타고 부서진 나무조각들이 이리저리 널려있고 땅들은 물이 고여있기 까지 했다.

이럴수가!!!
다행히 그날밤 캠핑하는 사람들은 우리 셋이 전부였다.

텐트를 치고 하룻밤 보낼 준비를 다하고 나니 해가 졌다.

나와 딸은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잠이 오지 않아 이 얘기 저얘기 이리 뒤척 저리 뒤척했다.
텐트속은 작은 방처럼 편안했다.
그 사이에 다른 텐트속의 남편은 잠이 든것 같았다.

잠이 오지 않아 작은 동물들의 호기심 어린 발자국 소리도 들으면서 온화했던 밤기운이 새벽녁에 뚝 떨어지는것을 느끼면서 나혼자 시간을 세고 있었다.

다행히 딸은 나보다는 잠을 조금더 잔것 같았다.

풀이 너무 자라서 우리는 원래 계획했던 Mt Dingo 꼭대기에 해뜨는것을 보러가지 않기로 해서 아침엔 일찍일어날 이유는 없었다.

아침은 전날처럼 안개에 푹 젖어있었다.

개울에서 물 두통을 길어와 아침도 준비하고 커피도 끓였다.

피곤할텐데 딸은 우리 둘의 침낭을 다 정리하고 나왔다.

평화롭게 두런 두런 얘기하면서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신다음 텐트를 걷었다.

모든게 원래대로 아무것도 없었던 모습으로 돌아갔다.
우리가 오기 전과 꼭같이....마치 마술처럼.
그리고 우리의 베낭세게만 덩그러니 남았다.

잠을 많이 안잤어도 항상 그렇듯 산에선 산의 정기를 받아선지(??) 힘이 났다.

다시 오던길을 힘을 내서 걸어갔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같이 하루를 산에서 오롯이 보내고 난 다음날은 무언가 눈에 보이지 않는 끈이 우리를 더 단단히 묶어주는듯한 뿌듯함같은것이 있다.

이번에 딸은 용감하게 도전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베낭을 메고 Taro’s Ladder를 올라갔다.
나는 이번에도 남편의 도움을 받았다.

전날 점심을 먹었던 곳에 다시 짐을 내려놓고 점심을 먹었다.
뙤약볕이 내려쬐는 10킬로를 걸어가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이번이 세번째이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음에도 해가 쨍쨍 내리쬐는 fire trail을 끝없이 걷는것은 참 힘들고 동기부여가 안됐다.

중간쯤 왔을때 남편은 자이언트 같이 큰 베낭을 흔들거리며 걸음을 빨리해서 혼자 훌쩍 걷기 시작했다.
우리가 주차한 곳은 2킬로를 더 걸어가야 되는 Golden Stairs 근처였다.
그는 우리보다 빨리가서 차를 몰고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언제나 그의 이런 살뜰한 보살핌을 받는다....

이틀간의 산행은 언제나 처럼 뿌듯함을 남기고 끝이났다.

항상 그렇듯이 산행이 끝나면 힘들고 괴로웠던 순간들은 다 잊고 좋은순간만 남아서 다시 다음을 계획하게 되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