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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 5

by Mt Solitary 2023. 8. 23.



1. 시인

아버지는 글을 쓰신다.
지난 5월 한국에 갔을 때 아버지가 쓰신 새로운 시집 두 권을 받았다.

책속의 아버지의 감성과 시각은 지금까지 봐오던 글에서 보다 조금더 순화되고 조금더 세월의 힘에 순응하는 모습이었다.

기억을 잃은 아내를 돌보며 드는 이런 저런 생각들 과 회환들이 주류를 이루긴해도 다행히 소소한 즐거움과 작은 행복도 글 속에 있어 마음이 약간 놓이기도 했다.

글을 쓰는것은 자기 자신과의 대화이고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순화시키고 도닥이는 과정이다.
나는 아버지가 그 시간을 온전히 아버지의 맘을 밝히고 또 평화를 찾는 시간이 되길 기도한다.


2. 예기치 않은 사건과 염색

지난 5월 말, 우리가 한국여행에서 돌아오던날 아버지가 갑자기 부산 집에서 넘어지셨고 그것은 심각한 엉덩이 뼈 부상으로 이어져 급기야 서울에서 큰 수술을 받게 되었다.

해서 부모님은 요양 보호사와 이어가던 거의 독립적인 생활을 접고 서울에 있는 동생집에서 살게 되었다.

갑자기 닥친 일로 동생은 예정되어있던 유럽여행도 포기하고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새로운 삶을 황망히 맞이하게 되었다.

나는 요즘 내가 호주에 오지 않았다면 이런 시기가 왔을때 부모님을 좀더 자주 찾아뵙고 혼자서 외로이 고군분투하는 동생과 책임을 조금이라도 나눌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내가 그런 기회를 더 많이 가질수 있다면 그건 나 자신에게 더 좋은 시간들이기도 할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든다.

좀더 죄책감을 덜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버지를 어릴 때부터 좋아했었다.
그냥 무조건 적인 감정이었고 아버지는 늘 상 내가 아버지의 가장 좋아하는 딸이라는 점을 강조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멀리 살면서 아버지의 너무 일방적인 대화 패턴과 물질적인 가치관이 맞지 않아 대화가 겉돌았다.

사실 아버지보다는 이민 생활에 지치고 이런저런 핑계로 자신의 이기심을 합리화하고 싶은 속 좁은 내 마음이 문제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 역시 아버지처럼 전화로 소소 하게 잘 챙기고 대화를 잘 이끌어 가는 다정한 성격은 못된다.

부모님은 이제 80이 넘도록 까만 머리로 염색을 하던것을 멈추게 되었다.

수술과 함께 엄청 살이 빠진 아버지가 염색마저 안 하자 그동안 비껴가게 보였던 세월의 흔적이 여실히 보여 많이 놀라고 마음이 안좋았다.

그래서 다들 염색을 멈추지 못하는가 보다….

살이 많이 쪄서 후덕해 보이는 엄마는 흰머리가 그렇게 눈에 거슬리거나 충격은 아니었다.

3. 동참

지난 주말에 동생이 부모님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가 집을 정리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큰 변화가 일어나기전 아무것도 예지하지 못한채 부산에서 부모님과 시간을 보낸것이 마치 아슬아슬한 곡예같은 행운이었던것 같기도 하다.

변화는 갑자기 닥친다.
물밑에서 그 변화가 일어나도록 수많은 과정이 있었겠지만 아무도 그때는 눈치를 채지 못한채.

나는 지금 이 머나먼 곳에서 아무것도 도와주거나 동참할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 무기력하고 우습게도 중요한일에서 배제된 듯한 소외감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치매 발병 후 엄마는 우리가 어릴 때 오랫동안 살았던 명륜동 집을 갑자기 기억해 내고 그 집으로 가겠다고 떼를 썼다는 얘기를 오래전에 들었다.

그리고 서울 동생집에 오면 부산집으로 어서 가고 싶어 했다고 하는데 이제는 짐을 정리하러 부산집에 가도 어떤 감정을 못 느끼는 것이 엄마의 상태가 심해지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고 맘이 안 좋다는 동생의 얘기가 신경이 쓰인다.

우리 삶은 기억이 전부 인지도 모르는데 그 기억을 잃어버린 엄마가 너무 불쌍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기억을 잃은 엄마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는데 기억을 잃은 엄마를 쳐다보는 우리만 괴로운것 같기도 하다.

엄마는 삶에 대한 너무 강한 집착과 과거에 대한 회환으로 차라리 기억을 잃어버리고 편해지고 싶었을까?
라고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할때도 있다.





4. 감성



자신과 유머코드가 맞아야 서로 재밌게 얘기도 하고 얘기하면서 웃기도 하고 그럼으로써 그 사람과 더 많이 더 자주 얘기하려고 하는 욕구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유머코드보다 더 중요한 건 마음을 나눌수 있는 감성이 아닌가 싶다.

서울 사는 동생은 내가 보기에 누구나가 얘기하고 싶어 하는 타입이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 공감 능력이 있다.

우선 상대의 말을 비판하거나 자르지 않고 들어준다.
그럴 때 누구나 편안함과 얘기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지 않을까?

그녀는 우리 집 식구의 특징인 큰 목소리와 쉽게 흥분하고 어디서나 화 잘 내는 성격을 아주 잘 비껴간 케이스다.

동생이지만 분명 배울 점도 많고 좋은 점이 참 많은 애다.

그렇다고 그 애가 할 말을 하지 않거나 화를 내지 않는 건 분명 아니다.
낮은 목소리로 조본조본 말도 잘하고 화가 나거나 감정이 복받치면 울기도 잘한다.

좋은일이 있으면 같이 나누고 수다떨고 싶을 때 부담없이 다가갈수 있는 그애가 있어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