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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by Mt Solitary 2024. 5. 6.








오늘 부터 4일간 나는 휴가다.

휴가! 이 얼마나 설레는 단어인가…
그런데 처음으로 휴가 계획이 없다.

남편은 휴가를 못받아 나혼자 놀게 생겼다.

그래도 휴가는 좋다.

아침을 먹고 여유있게 숲으로 걸으러 갔다.
열흘전에 받은 haemorroid banding 시술로
아직 달리기는 무리다.

생각보다 시술이후 후유증이 커서 약 열흘간
두문불출하면서 끙끙앓았다.
게다가 일주내내 비가 내려서
나의 우울 지수는 극도로 높았던것 같다.

이번주에 들어서도
생각보다 dramatic하게 좋아지진 않았어도
주말부터 걷기 시작했고
진통제에 의존성이 생길까봐
일주일 정도 먹다가 그것도 끊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것 같다.

아랫배가 묵직하고 아프면서
식욕이 없는 상태가 일주 내내 지속되어
무기력하고 우울해서 힘들었다.

내가 늘 가는 트랙으로 차를 몰고 가는데
비가 내린다.
비가 차창을 세차게 때린다.

하늘은 잿빛이고 무겁게 내려앉았다.

하지만 나의 결심은 굳다.
비옷도 있고 우산도 있으니 비가 오는건 문제가 아니다.

걷는것 만큼 세상에서 쉬운일이 더 있을까…
걷는것 만큼 쉬우면서 더 위안을 주는일이 나에게 또 있을까…

스산한 바람이 불어 물기를 머금고 쌓여있던 단풍잎들이 사방으로 날아간다.
아….너무 스산하고 너무 쓸쓸한 풍경이지만 순간 참 처연하게아름답다고 느꼈다.

늘상 푸른 검트리들이 무성한 곳을 지나치는것과 발갛고 노란 늦가을의 단풍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곳을 지나치는건 정말 극도로 다른 감성을 유발시킨다.

나는 늘상 늦가을과 겨울의 스산함이 나의 마음을 무겁게 붙잡아 내리는것이 힘겨웠는데 오늘에사 내가 왜 여름의 가벼움이 홀가분하고 마음편했었는지 또 새삼 알겠다.

차를 주차하고 비옷은 그냥 두고 우산을 챙겨서 트랙으로 접어든다.

을씨년한 바람소리가 나를 자꾸 뒤돌아 보게 한다.
세찬 바람이 나무가지에 남아있던 빗물을 사방으로 뿌리고 나는 추위를 느껴 옷을 여미며 트랙입구를 걷기 시작한다.

곧 얼마 걷기도 전에 하늘은 말간 파란색으로 구름이 걷히고 심지어 햇살이 내 얼굴을 비춘다.

갑자기 기온도 오르고 내 기분도 비장함에서 가벼움으로 바뀐다.

갑자기 나는 킁킁 큰 동작으로 숨을 마시며 그 순간을 즐긴다.

새소리를 들으며 걷는다는 사실이 좋다.

집안에선 느낄수 없었던 자유로움같은 가슴이 확 트이는 느낌이 갑자기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일주 내내 오락가락하던 비 덕분에 트랙 곳곳에 물이 불어 마치 작은 시내가 수십개 생긴듯 흐르고 곳곳에 물 웅덩이들도 생겼다.

나는 걷는다.
그저 걷는다.

아침부터 마치 걷지 않으면 큰일이 날것 처럼 다급했던 내마음도, 트랙초입에선 이 생각 저생각으로 복잡했던 내 마음도 돌아오는 길엔 내가 얼마전에 무슨 생각에 골똘했었던지도 다 잊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걷는다.

걷는것에 나를 잃어버리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