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억수같이 내린다.
오전에 우산을 받고 남편과 에어비엔비 근처 창덕궁과 창경궁을 걸어 다녔다.
샤워하고 작은 툇마루에 앉아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를 보며 커피를 마신다.
샤워하면서 커피를 마실까 생각했는데 남편도 같은 생각인지 내가 샤워하는 동안 물을 끓여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 부쩍 느끼는데 이심전심일 때가 많다.
남편이 툇마루에서 커피를 마시자고 한다.
샤워한 담이라 뜨근 뜨근한 온돌방이 좋아 밖에 나가기가 어설프고 귀찮않는데 막상 나가니 시원한 공기가 좋아 이젠 들어오기가 싫다.
시원한 바람속에 앉아 있으니 잠시 나마 시름이 가시는 느낌이다.
단순하고 작은 중정의 풀과 내리는 비를 보고 있자니 생각이 나도 모르게 아버지께로 향한다.
언니의 죽음이후 나의 가장 가까운 혈육인 아버지가 돌아가신것이 내게 아직도 현실성이 없다.
어제 북한산 산행을 갔을때 스쳐 지나간 작은 암자에서 낭랑하게 흘러 나오던 염불소리에 갑자기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붉어졌을때도 나는 내가 왜 우는지도 잘 모르겠다 싶었다.
마치 감정도 적절한 때가 되길 기다리며 발산을 유보하는듯 하다.
너무 많은 일들이 여행중에 일어났고 나는 반추할 시간도 없이 아직도 헤매고 있다.
시드니 에서 뉴욕으로 뉴욕에서 다시 서울로 여행용 가방을 옮겨 다니며 붕 떠있는 느낌이다.
다시 시드니로 돌아가서 일상으로 복귀하면 불현듯 감정이 복받쳐서 제대로 한없이 울기라도 할수 있을까?
아버지와 제대로된 이별의 기회를 놓쳐버리고 만 나의 절망감은 시간이 해결해 주기나 할까?
내리는 비처럼 슬픔이 나를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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