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
집을 떠난지 겨우 3주 남짓이었는데 이번 여행은 힘든 시간들이 많아선지…집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나를 압도했다.
수요일 밤 10시에 서울을 출발한 비행기는 목요일 오전 10시가 채 못된 시간에 여행 3주만에 녹초가 된 우리를 시드니에 내려놨다.
공항에서 우버를 타고 집으로 오는길에 바깥을 내다 봤다.
사람들에 치이고 툭하면 빵빵거리는 차들에 놀라던 뉴욕에 갔다와선지 뉴욕만큼 복잡하면서 정신 없는 서울에 갔다와선지…시드니는 참으로 사람사는 곳 처럼 느껴진다.
이곳이 이제는 나의 집이라는 실감이 새삼스러웠다.
시드니에서 뉴욕으로 21시간 비행 뉴욕에서 서울 15시간 그리고 서울에서 다시 시드니로 10시간 비행을 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빙빙돌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뉴욕에서의 시간은 나름 값지고 의미로왔다.
온갖 어려움속에서도 2024년 10월 10일 이루어진 딸의 결혼식은 소박하나마 성공적이고 아름답고 행복한 결혼이었다.
그 자리에 우리가 있을수 있었다는 사실이 나는 너무 감사하다.
새로운 인생의 장을 여는 그애가 너무 예쁘고 딸의 배우자는 너무 듬직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한국 시간 10월 9일 새벽 12시 9분경 아버지가 이세상을 떠나셨다.
암 진단후 채 3주가 채 안된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딸의 결혼식 다음날 우리는 부랴 부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서울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장례식 이틀 뒤 새벽 5시에 서울에 도착한 나는 망연자실 삼오제가 열리는 곳으로 갔다.
이미 모든것이 다 끝나 아버지는 한줌의 재로 그곳에 묻힌 사실이 허무하고 공허한 마음만 가득했고 나는 현실감을 잃은채 아직도 아버지가 가신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잘 우는 나도 눈물이 잘 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럴게 급작스럽게 이런 일이 일어난건지….
돌아가신 분을 뒤로하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뒷마무리 서류정리에 의견이 분분 그동안 갖혀있던 감정들을 봇물 쏟아붓듯 토해내고 그런 사실에 정나미가 떨어짐과 동시에 내가 벗어던져야 할 나 자신의 욕망의 민낯과도 마주쳐야 했다.
모든것은 돈과 욕심과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이 허무함과 동시에 일어날 일은 빨리 일어나서 마음을 비우는것이 낫다는 체념같은 마음이 들었다.
삼오제 이후 일주정도 서울에 더 머물렀다.
마음이 즐거울리 없었지만 나름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아주 더운날 북한산을 올랐다.
이번이 세번째 였는데 가장 힘들고 긴 코스를 가게 되어 정말이지 한국의 산은 더이상 가지 않겠다는 결심아닌 결심을 다시 하게 되었다.
북한산은 작년에 갔던 한라산이나 영치산 처럼 깎아지른 가파른 산이 전부 계단으로 만들어져 끝도 없이 나를 위협했다.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누르면서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이끌고 끝까지 산행을 마쳤다.
산행 외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이 잘 떠오르진 않았는데 아무래도 구 서울의 이곳 저곳을 돌아보는것이 좋았다.
한옥마을과 인왕산 둘레길 그리고 남산등을 돌아봤다.
깊어 가는 가을의 시린 공기속에서 옷깃을 여미며 아직 기지개를 켜고 있는 느린 서울의 아침을 이곳 저곳 산책하던 시간이 정말 좋았다.
낮동안의 지나치게 복잡한 관광객인파를 피할수 있고 아침이 늦게 시작되는 한국의 조용한 아침시간이 그나마 평화로움을 선사해 줬다.
낮동안의 서울은 너무 복잡하고 정신이 없었지만 심혈을 기울여 고른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가족끼리 나누는 시간들은 참 좋았다.
비오는날 남편이랑 고궁을 걷던 시간도 좋았다.
고즈녁하고 평화로왔다.
이제 집으로 돌아와 여행전에는 그렇게 힘겹게 느껴졌던 일상이 사실은 내가 찾아 헤매던 나의 파랑새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나는 나의 일상을 사랑하고 나는 내가 사는 소박하고 오래된 작은 아파트를 사랑하고 나는 내가 일하는 사실을 사랑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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